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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귀에 꽂은 이어폰을 통해 아무래도 좋을 사건, 사고가 나열되고 전철 자동문에 기댄 몸이 차갑게 식어 갔다. 엄청나게 싫어하는 완연한 겨울 날씨. 밖은 함박눈이 온 세상을 뒤덮으려는 기세로 내리고 있었다. 새하얀 세계가 시계를 어지럽혀서 구역질이 날 것 같다. 겨울은 오지 않으면 좋을 텐데.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을 입에 담으며 다시 한 번 쪽지 내용을 확인했다. 간략히 용건이 적힌 메모, 아버지로부터 전해진 전언. 무언가 석연치 않다. 대략 6년이란 공백 기간이 아버지와 나 사이에 존재한다. 매몰차게 내쫓아버린 아들을 갑작스레 보자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싶어 출발 전부터 두뇌를 풀가동 시켜보아도 마땅한 명분이 없다. 그 분 성격상 옛날 어릴 적 추억 되새기기 같은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잔 것도 아닐 테고. 생각 할수록 의문투성이다. ... 어머니 기일 날과 겹친 건 단순히 우연이려나. 새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었다. 물론 미성년자 입장과 여긴 금연 장소라는 플러스가 붙어 불을 붙이진 못한다. 애초에 라이터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날 이후, 나도 모르게 생긴 버릇중 하나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어머니를 닮고 싶었다, 단지 그 것 뿐이다. 어느새 플랫폼에 멈춘 전철 문이 열리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내부를 천천히 채워간다. 멍하니 그 물결을 바라보다 깨달았다. 미성년자가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모습은 과연 보기 흉한 모양이다. 다들 살벌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 단결된 행동에 압박을 받아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서 빠져나왔다. 가끔은 걷기 운동도 필요한 법이지. 난 저만치 멀어져 가는 전철을 배웅하고 발걸음을 뗐다. 그 동안 얼마나 변했을지. 내가 12년간 자라온 동네, 그리고 기억에서 지워버린 장소. 무언가 바뀔 수 있을 꺼라 여긴 내 자신의 결심은 어디까지 지켜졌을지. 역을 나서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길게 늘어서 있던 농경지가 사라지고 유흥업소들이 늘어서 있는 것과 만취해 널브러진 중년 남성, 영업용 미소를 머금은 술집 여자가 미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여자와 일순 눈이 맞았지만 못 본 척 지나쳐서 걷기 시작했다. 언제까지나 계속 변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다, 어머니가 남기신 마지막 유언이 문득 떠올랐다. 십여 분 간 걷자 주변 풍경도 크게 바뀌어 깊숙이 박아둔 기억의 단편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떠올리기 싫은 악몽도 예외 없이.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듯 검은색 고급 승용차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조폭 영화의 한 장면도 아니고 말이지. 살 떨리는 전개로군. “오랜만입니다. 도련님, 많이 변하셨군요.” 운전석에서 내린 인심 좋은 시골 아저씨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가 활짝 웃었다. 타고 온 차와 상당히 대조되는 가벼운 옷차림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아쉽게도 내 대뇌 용량초과로 누군지 기억이 안 난다만. 호칭은 뭐라 불러야 좋을지 몰라 그냥 쳐다보기로 했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기대하면서 눈싸움 아닌 눈싸움을 몇 초 간 유지하고 있자니 제 3자가 개입해왔다. 그 뒤 일사천리로 상황이 진행됐다. “아 진짜 귀찮아 죽겠네. 아버지, 이 녀석은 말 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더 빨라. 이렇게 말이지!” 어디선가 잽싸게 튀어나온 여자가 양손을 낚아채서 밧줄로 포박한 뒤 날 뒷좌석에 구겨 넣었고 반항할 새도 없이 남자는 재빨리 시동을 걸어 차를 출발 시켰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창문 밖 경치와 오순도순 즐겁게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녀의 흐뭇해지는 광경이 유난히 멀게 느껴질 무렵, 난 이 모든 일련의 사건을 토대로 현대의 납치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네, 란 결말을 도출해 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상황자체가 납득이 가는 건 아니다. 이건 유괴나 마찬가지잖아. 우선 밧줄이라도 좀 풀어줘! “이거 실례. 도련님이 타고 있다는 걸 깜박했군요. 흠, 죄송합니다. 전부터 거친 방식은 안 된다고 딸아이에게 주의를 주었는데 이렇게 모시게 돼서.” 거짓말 하지마시죠. 이렇게 빨리 반응 해 놓고... 아니, 그것 보다 날 잊지 말라고! “어찌됐든 여러모로 옛날 생각이 나네. 동네 깡패 무리랑 시비가 붙어서 벌벌 떨다가 정체절명의 위기 때 내가 구해준 일이나 동네 경치 구경하겠다며 절벽을 찾으러 뒷산에 올라갔다가 일주일간 행방불명된 일이나. 기억나? 그때 내가 널 찾아냈잖아. 눈물 콧물 범벅이 돼서 야생동물한테 쫒기는 걸.” 기억 안 해. 할까 보냐. 그런 스스로도 부끄러워 질 애처로운 기억 따위. 그 후로도 남자와 여자는 환하게 미소를 보여주며 계속 말을 걸어주었고 그때마다 난 한숨을 내쉬었지만 왠지 싫지 않았다. 아주 오랜 기간 사귀어 온 친구 같은 포근함과 따스함이 느껴져 긴장이 스르르 풀리는 감각이 좋았다. 아버지와의 만남이 부담스러워 어지간히 굳어 있었던 모양이다. 애석하게도, 아직 이들이 과거 나와 어떤 관계였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떠올리고 싶었다. 오랜 기간 난 사람과의 교류가 어지간히도 없었다. 모처럼 호의로 다가온 사람을 등한시 할 만큼 강하지 못하다. 결국 나도 약해 빠진 인간 중 하나니까. “그나저나 너 왜 담배를? 아주머니께서 피우 실 때도 그렇게 싫어하시더니.” 갑자기 불쑥 얼굴을 들이민 여자는 무지막지한 악력과 다르게 의외로 여성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생김새였다. 가까워. 얼굴, 너무 가깝다니까. “이건 단순히 부적이야.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내게 남겨주신 유일한 유산이지. 정확히 말해 내용물이 아니라 이 담뱃갑이. 사실 버릴까도 생각했는데 어차피 안 피니까.” “미성년자가 소지하는 것 자체로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어찌됐든 호기심으로라도 피지 마. 반 쯤 죽여 놓을 지도 모르니. 하하하.” “걱정 마. 안 들키고 잘 숨어서 처리 할 테니.” “하하하. 이 자식아, 당장 몇 대 맞아 볼래?” “... 죄송합니다. 안 할게요.” 마른 웃음 뒤로 살의가 느껴져 등줄기로 식음땀이 흘렀다. 혹시 예전부터 나와 이 녀석은 항상 이런 느낌이었나? 상상만 해도 두려워지는 관계였다. 이야기가 끊긴 틈을 타 슬쩍 여자를 관찰하기로 했다. 애매한 기억 탓에 무엇 하나 정확히 기억나는 게 없으니. 단정하게 묶어 내린 포니테일과 어떤 소재인지 몰라도 굉장히 부드러워 보이는 갈색 코트, 더러운 말투, 급한 성격과 정반대인 부드러운 인상, 체격은 나보다 약간 작아서 가냘픈 평범한 여고생... 처럼 보인다. 저 신체 어디서 그런 힘이 쏟아져 나오는 지 미스터리다. 시선을 돌려 이번엔 남자 쪽을 살펴보았다. 별 달리 특징은 없다. 아무리 봐도 동네 아저씨다. 이걸로 설명 끝. 한 동안 정적이 흘러 슬슬 수마의 손길이 드리워질 때 거친 손길이 느껴졌다. 안 봐도 뻔하다. 조금은 짐짝 취급 받는 사람 입장도 생각해 주라. 여자는 어쩐지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 도착이다. 그리운 집에 도착한 소감이 어때? 막 눈물이 쏟아 질 것 같아?” 그 보다 일단 뒷목 잡혀서 질질 끌려가는 남자의 자존심을 주워 담아줘. 난 투덜대며 옷매무새를 제대로 한 뒤 고개를 들었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감성을 자극할 만한 물건과 배경, 건물, 그리고 그 중심에,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순간 나로서도 이해 못할 감정이 목구멍을 타고 하나둘 꿈틀꿈틀 기어 올라왔다. 입술이 찢어질 정도로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건 분명, 기분 좋은 감각은 아니었다.
요즘 꿈을 꾸곤 한다.
지난 1년 간 꿈이라고는 전혀 꾸며 살아오지 않은 터라 때때로 구분이 안 갈 때가 있다. 내 눈앞에 펼쳐진 눈이 멀어버릴 듯이 새하얀 공간이 현실인지 빛을 잃어 항상 검정의 시야로 뒤덮힌 흑빛 세계가 현실인지. 어느 쪽이든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이 비추어 보이는 건 마찬가지지만. 특히 이 방은 나를 불쾌하게 만들기 충분한 환경이었다. 사방팔방 거울 천지. 전신거울부터 시작해서 간신히 손바닥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거울 등 각양각색의 거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웃음기라고는 없는 어두운 표정,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안색, 흡사 썩은 동태 눈깔을 연상시키는 눈동자가 비춰진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찾은 병원에서 내려진 전색맹 진단 때 보다 강렬한 구토가 몰려든다. 어째서 내가 이런 상황에 직면해야 하는가. 요 며칠 간 계속 된 고문과도 같은 이 꿈속 세상은 날 자극하기 위해 누군가 의도적으로 주입 시킨 마약을 연상시켰다. 어째선지 중학생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수많은 건방진 꼬맹이들 중 하나에 불과했던 나는 상당히 자신감, 아니 자만심이 가득차 있었다. 뭐하나 특별히 뛰어난 부분이 없어 늘 풀이 죽어 지내온 내가 어느 날 우연찮게도 달리기에 소질이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단순히 길을 지나가다 발견한 20대의 빈집털이를 막다른 길로 유인해 붙잡은 사건이 담임선생의 귀에 들어가 버린 게 발단이었다. 우습게도 난 당시 시키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박혀있어서 육상부 입부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오로지 내가 받은 기대만큼 뭔가 크게 해내 겠다는 일념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강박관념에 사로잡혔었다고 할 수 도 있다. 항상 부모님께 넌 겨우 그 정도냐며 무시와 멸시를 받아온 내게 있어 담임선생의 관심은 힘껏 달릴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내 인생 중 제일 빛난 시기였다. 어느 대회든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였고 그 동안 날 업신여겨 온 부모님도 날 돌아봐 주었다. 비록 눈앞의 세계가 여전히 칠흑같이 어두운 기나긴 통로일지 라도 이 행복을, 충족감을 이어갈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내게 그런 폭력적인 부분이 있을거라 생각지 못한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아마 단순히 쌓이고 쌓여서 더 이상 부풀어 오를 자리가 부족해진 이기적인 마이너스 감정이 표출 된 걸지 모른다. 유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되던 남자아이를 다시는 뛰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야구 방망이로 내려 칠 때마다 들려오는 고통과 공포로 가득찬 비명소리, 엄청나게 기분나쁜 비릿한 피 냄세, 온 몸을 타고 흐르는 전율, 그 감각 하나하나가 손끌부터 타고 올라와 날 미치게 만들었었다. 차에 깔려 죽은 고양이 시체 마냥 미동조차 하지 않는 남자아이를 뒤로 하고 덜덜 떨리는 몸을 억지로 이끌었다. 멍한 머리로 여기저기 피로 더럽혀 졌으니 닦아서 가야겠다고 되뇌이면서 화장실로 들어섰고, 그 순간 다리가 풀릴 정도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치 악마와 같은 어긋난 감정. 거울에 비춘 내 얼굴은 즐거워서 견디지 못하겠다는 것 처럼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내가 한 짓이 얼마나 무섭고 일생 동안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게 될 일인지 깨달았다, 라는 이제와서는 많이 흐려진 기억. 그 사건 후로도 부모님은 여전히 날 돌아보고 웃어준다. 비록 그 뒤로 숨겨진 공포가 자꾸 중학생 시절의 날 떠오르게 만든다 하더라도. 난 사랑 받고 있다. 설령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자라나 주체 못할 원망이 담겨있다 하더라도. 그런 아주 시시하고 보잘것 없는 이야기. 이 꿈은 스스로 나 자신을 질책하는 무의식이 만들어 낸 풍경일지 모른다. 온통 거울, 거울, 거울, 거울. 난 오늘도 차갑게 식어버린 몸뚱이를 힘겹게 일으켜 세워 차례, 차례 거울을 부셔간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반항이니까. ------- 허세 킹! ![]() ![]() ![]() ![]() ![]() 이건 뭐 볼때마다 슬프네 ㅠ 오늘 하루 일과도 끝내고 역시나 잠 자는게 내게 주어진 기분 좋은 시간. 하아. 힘들구나
물론 원본 그림을 보면서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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